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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생각들2012/01/09 03:32


초등학교(물론 당시에는 국민학교)  6학년 때, 반 아이들이 졸업 전에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책을 한 권 만들었었다.

'꿈나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40명이 넘는 급우들이 다 같이 기획하고, 다 함께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소중한 책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각자 간단한 자기 소개를 넣었어야 했는데, 반드시 적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장래희망'이었다.

지금도 서울 집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는 이 책의 내 소개 부분에는, 장래희망에 "프로그래머"라고 적혀있다.







NEX-5 | Aperture priority | 1/1000sec | F/5.6 | 16.0mm | ISO-200



사실 요즘이라면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꿈(..일 것이라 생각한다)이지만, 당시 아직 국민학교 시대였던 90년대 초중반 시절에는,

프로그래머라는 장래희망이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흔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흔한 일이 아닌 만큼, 당시의 나같은 꼬맹이가 프로그래머라고 해도 뭔가 딱히 알고 하는 말도 아니긴 했다.

단순히,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보다도 더 먼저 접한 GW-BASIC 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푹 빠졌었을 뿐이다.

컴퓨터는 내가 입력한 명령어들의 조합(사실 그것도 그렇게 많은 종류도 아니었을 것이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히, 순서대로 실행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합되어 나오는 기능은, 기본 명령어에는 절대 없는 새로운 기능이 되었다.

이런 지극히 당연한 것이, 당시 꼬맹이었던 나에게는 너무나 신선한, 정말 그야말로 '게임' 같은 감각으로 다가왔다.

그런 '게임'같은 감각에 푹 빠져서,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는 자신의 꿈을, 당시에 유행하던 "과학자"가 아닌, 생소한 "프로그래머"로 정한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내 꿈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은 없다.

사용하는 언어나 개발 규모는 바뀌어 왔지만, 프로그래밍은 여전히 나에게 있어서 컴퓨터로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고,

정확히 필드에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무엇을 하던 이런 즐거운 프로그래밍을 할 수만 있다면, 

그 것 자체로 내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SLT-A55V | Aperture priority | 1/8sec | F/3.5 | 16.0mm | ISO-1600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겼다. 

(재미있게도, 대학 입학 자체도 중고생 시절의 프로그래밍 관련 경력들을 인정받아서 참 쉽게 진학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대학생이 되어서도, 내 꿈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 적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단지 문제는, 내가 조금 커서, 부끄럽게도 조금 세상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철없이 그저 개념없이 놀아 제끼던 학부 1학년 시절은 제외하더라도,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생각보다 많이, 자신도 놀랄만큼, 세상의 인식과 직업 시장의 상황을 의식하게 되었다.

한국내에서 개발자, 더 넓게는 IT업종에 관한 인식은 슬플 정도로 좋지 못했으며, 

"프로그래머"라는 꿈에 대해서 신기하게 보던 주변의 시선은, 안타깝게 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오랜기간 흔들리지 않던 나의 꿈이, 세상의 정황이 바뀌었다는, 더 정확히는 주변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나를 붙잡아 준 것은, 하나의 집단과, 하나의 행사였다.

이 둘은, 나의 대학 생활을 가장 대표하는 키워드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큰 자극을 주고, 목표를 만들어주었다. 






대학 시절에도 나는 '프로그래밍'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안타깝게도, 다른 모든 친구들의 대학생활과는 크게 달랐다.

수업도 일부러 프로그래밍을 조금이라도 더 해야하는 과목을 택했고, 당장 과제가 밀려있어도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잠을 줄여서라도 코드를 짰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가능한한 프로그래밍을 피하고, 철저한 학점 관리와 높은 토익 점수를 우선시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수록,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지고,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의심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진 이러한 불안을 한 방에 날려준 것이 위에서 말한 "하나의 집단",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SSM)이었다.

그들은, 출신도, 학교의 성적도, 토익 점수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보여줘야 하는 것은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인공지능 설계에 관심이 있었고, 배경 지식없이 그냥 막 내 생각대로 설계해 본 인공지능 모듈(이라 할만큼 거창한 것도 아니지만)이 있었다.

마음대로 생각해 본 아이디어였기에, 친구들에게 이를 설명하고 의견, 가능하다면 조언을 듣고 싶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괴짜가 만들어낸, 당최 이해할 수 없는(이해하려고도 안 하는) 코드의 집합이었던 것 뿐이다.

근데 SSM의 기술 면접에서는, 달랐다. 그들은 내 설명을 굉장히 신기한 듯이 끝까지 들어주었다. 눈을 빛내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는 바로 "결국 단순히 xxxxx한 것 뿐인데, 그걸 인공지능이라고 까지 할 수 있나요?" 라고 정면에서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그냥 아예 개념부터 부정당했다. 그래도 그 것은, 내가 처음으로 받은 지적이었다. 이 것을 만들어 내고 처음으로 받은 소중한 의견이었다.

나는 바로 반박을 시작했다. 왜 이것이 성립하는지, 왜 이것이 유효한 것인지를 순서대로 설명해나갔다. 이윽고 면접관은 끄덕였다.







해를 거듭할 수록 취업 시장은 힘들어지고 있다고 하고, 친구들은 과제와 프로젝트로 밤을 새고, 매달 토익 시험을 치러 가는 와중에,

참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까지 딴 짓만 해오던 것 같은(실제로 내 안에서는 '취미'같은 것이었기에, 딴 짓이긴 하다 ㅋ) 내가,

혼자 그냥 3학년때 덜컥 대기업 취업이 결정된 것이다. 

취업이 결정된 '안정감'이라는 것도 있기는 했다. 아니 대놓고 말해서 그 당시에는 참으로 기뻤다. 

꿈에 꽤 가까운 선에서, 남들 보기에도 좋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근데 더 놀랍게도, 내가 SSM에서 진정으로 얻은 것은, 취업이 아니었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학교에서 만나던 사람들과 정말 크게 달랐다.

개발에 대한 의욕이 누구보다 왕성했으며, 학교 공부에 지장이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밤샘 작업을 했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개발을 너무나 재미있어했다.

막말로, 나같은 애들은 그냥 널려있었다. 아니, 나보다 더 월등한 애들이 널려있었다. 이는 정말 신선한 자극이었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때의 인맥은 지금도 나에게 자극이 된다. 열심히 사는 그들을 보면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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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행사" 또한 놀랍게도, SSM과 동시에, 학부 3학년 시절에 나에게 다가왔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어떠한 문제를 프로그래밍을 통해 해결하는 '문제 해결'의 쾌감은 최고였다.

사람이 그냥 하면 하루는 꼬박 걸릴 일을, 컴퓨터는 1분이면 해결할 수 있었지만, 

컴퓨터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에 따라서, 컴퓨터는 이를 1초도 안되는 시간에 해결할 수 있다. 

그간 바르게 동작하기만 하면 되었던 프로그램이, '효율'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를 개선해나가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효율'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문제를 풀어내는 쾌감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가 ACM-ICPC였다.

대학생들이 3인 1팀이 되어서, 주어진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풀어내는 대회.

인터넷 예선부터 시작해서, 각 지역/국가에서의 본선, 세계 대회까지 이어지는, 문제풀이에 관한 최고의 이벤트이다.

이를 늦게 알아버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채, 3학년 때 처음으로 대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예상치도 못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결국 첫 해를 포함해서 3년간(학부 재학중 최대 3회까지 참가 가능하다 해서, 무려 1년 휴학까지 했다), 죽어라고 참가했다. 

수백명이 참가하는 모교내의 예선부터 시작해서, 한국 인터넷 예선을 거쳐, 서울이나 아시아 지역의 본선까지 3년 연속 출장했다.

이때는 한 스텝 한 스텝이 너무나 즐거웠으며, 필리핀, 싱가폴, 말레이시아 순으로 3년 연속 (학교 돈으로..) 해외 원정을 가보면서,

문제 해결의 즐거움을 새삼 느끼고, 국내와 세계의 높은 벽을 느끼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면서 분명 나는 성장했다(고 믿고 싶다).






이렇게 두가지 요소로, 학부 3학년을 기점으로 내 프로그래밍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학부에서는 최소한의 공부만 했으며, 매일 매일 팀 프로젝트와 문제풀이의 연습을 했다.

내 꿈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고, 하루하루가 충실했고, 즐거웠다.












PENTAX K10D | Aperture priority | 1/320sec | F/9.0 | 16.0mm | ISO-100


졸업할 때가 되었다. SSM을 수료했다. 입사는 포기했다. 

SSM에 합격했을 때의 누렸던 기쁨이 마치 거짓 말처럼 느껴질 만큼, 너무나 간단히 입사를 포기해버렸다.

나는 충분히 그 곳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많은 자극을 얻었고, 좋은 사람들을 얻었다. 그에 비하면 입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취업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가 받아온 것들이 그 것에 비해서 너무나 컸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졸업할 때가 되어서, 나는 갑자기 공부에 대한 의욕에 넘치게 되었다.

개발을 하면 할 수록, 그 배경에 대한 이론적 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냥 이유도 없이 막 더 좀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초기에는 한국의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다. 아니 실제로 시험도 치고, 합격도 해두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유학길에 올랐다. 입사도, 한국 대학원의 진학도 버려두고 그냥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

(결정적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지만, 굳이 기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블로그의 초기 기록을 보면 고민하고 고민하는 내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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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 꿈은 코찔찔이 초등학교 6학년 이래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지금도 개발을 하고 싶고, 당장 손으로 코드를 짜 나가고 싶다. 필드의 일선에서 기획, 설계, 개발, 테스트까지 죄다 경험하고 참가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하루가 다르게 꿈과 멀어지고 있다.

유학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놀라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 해 온 공부랑 완전히 다른 공부를 경험했고, '연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더 알고싶다는 욕망, 더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에, 박사과정까지 진학했다.

꿈에서 시작해서, 그 꿈에서 부터 이어진 길을 걸어왔는데, 사실 이 길은 내 꿈과는 멀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애초에 정말 이 길에 꿈에서부터 나온 길이냐고 한다면, 그 또한 복잡한 이야기이긴 하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일선에서 개발을 하고 싶다." 라는 말이 참 어색하다.

나 스스로도 어색하다 느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런 흐름은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새삼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걸어 온 길, 해 온 결단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다.

꼬맹이 시절 재미에서 시작된 꿈을 계속 따라왔고, 학부 졸업 즈음해서는 거의 그 꿈을 어느정도 이루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사실 입사가 그 꿈을 이루는 것인가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고 미묘한 문제이다 ㅋ)

지금은 너무 많이 지나쳐 온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자주 든다.




박사 진학이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길이지.

하지만 내 꿈에 비추어 볼 때, 이 선택은 좋았는지 어땠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자꾸 고민하고 멈춰선다.

당장 논문에 쓸 연구를 걱정하고, 내가 무사히 졸업을 하기 위해서 어떤 페이스로 무엇을 해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보면,

엄청난 회의감에 사로잡혀서, 굉장히 우울해지는 것이 정말 내 솔직한 심정이다.

딱히 관리직에 앉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꿈을 향해 좀 더 깊은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 길의 끝에 내 꿈이 있다는 확신이 없다.










PENTAX K10D | Aperture priority | 1/3200sec | F/3.5 | 50.0mm | ISO-100



나는 남들보다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런 착각을 하며 살았다.

그냥 우연히 몇 개 일들이 잘 풀려서, 모든 것들이 마치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진짜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좋은 자극이 되고,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그들의 절반도 노력하지 않는 나는, 환경이나 탓하면서 후회를 반복하기만 했다.

유학을 와서 벌써 몇번째 후회를 하고, 몇번째 각오를 다졌는지 이제 셀수도 없다. 

하지만 의지가 약한 나는, 이렇게라도 자주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앞으로 잘 나아가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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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aika